하영제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에게 듣다
국제곡물회사를 미국 시카고에 설립해 국제곡물전쟁에 나서는 하영제 농수산물유통공사(aT) 사장의 다짐은 자못 비장했다. 25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간 이상 서울 양재동 사옥 사장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하 사장은 이 회사를 통해 식량무기 시대에 식량자주율과 물가안정기능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메이저와의 싸움에 난관도 많을 것이라면서 일각에서 ‘장밋빛 환상’이라 부르는 시각도 인정했다. 곡창지대의 국가들은 외국인의 곡물시장진입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4대 곡물 메이저가 담합해 우리나라의 진입을 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모두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오히려 그는 4대 메이저 중 하나와 손을 잡고 다른 메이저와 경쟁할 수준까지 회사를 키우겠다는 ‘전략적 제휴 청사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하영제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지난해 초부터 전문회계법인과 함께 내부 연구를 해 왔고 이미 직원 2명을 미국 시카고 현지로 파견해서 법인 창립 작업을 준비해 왔다. 사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29위다. 또 바이오에너지 수요 확대로 곡물시장의 불안정성이 계속되고 있다. 국제투기자본의 곡물시장 개입으로 국제곡물가격 변동성도 커졌다. 또 국제곡물시장의 유통단계는 메이저곡물사들이 80~90%를 점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수입 곡물의 70%를 이들에게 의존하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식량안보의 위협을 겪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항하기 위해 국제곡물유통망을 확보하는 국제곡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2015년까지 옥수수·밀·콩 등 400만t을 들여오게 된다. 이 경우 우리나라 식량자주율은 50% 수준까지 올라가게 된다. 단기적인 일정은 오늘(25일) 민간 기업 3사와 국제곡물회사 설립 협약을 체결하고 29일 미국 시카고 현지로 이동해 현판식을 열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규모면에서 국제곡물사와 우리 법인은 상대가 안 된다. 곡물메이저 중 한곳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다른 메이저들과 경쟁하는 구도로 가게 될 것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제공
농수산물유통공사 하영제(왼쪽 두 번째) 사장이 2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국가곡물조달 시스템’ 구축을 위한 투자협정 체결식에서 한진 최정석(왼쪽) 본부장, 삼성물산 표주영(오른쪽 두 번째) 상무, STX박동일(오른쪽) 상무와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제공
농수산물유통공사 제공
→누구나 필요성을 공감하는 계획이다. 하지만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처음에 참여키로 한 민간업체 중 한곳이 빠지는 등 현실성 문제를 지적하는 곳도 있다. 메이저 곡물회사들의 견제가 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우려는 당연히 알고 있다. 지금까지는 곡물메이저가 가격을 10% 올리면 국내유통회사도 10% 올려 팔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업계가 아니라 그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서민이다. aT는 유통구조 개혁을 통해 좀 더 유통비용을 줄여 민간업체들이 서민에게 곡물관련 식품을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 만일 우리 국제곡물회사가 직접 수입하는 곡물 가격보다 경쟁을 위해 곡물메이저가 더 저렴하게 공급한다면 국내 유통업체는 그들의 물건을 사면 된다. 또 우리가 직접 수입한 것이 더 싸다면 이것을 구입하면 된다. 단, 서민에게 그만큼 저렴하게 공급해야 할 것이다. 현재 곡물 수입의 독과점적 구조가 변하는 셈이다.
→aT가 산지 엘리베이터(EL)를 산다고 발표했는데 인수가격이 크게 뛰지는 않겠는가. 전문인력은 충분히 갖추었나. 전문인력만 수백명이 진출한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산지 EL 10개를 지닌 중견기업을 인수하려 하는데 사실 가격 인상이 우려된다. 따라서 인수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다. 다만 우리가 콩, 옥수수 등을 사오는 지역은 미국의 중·서부에 걸쳐 형성된 세계 제1의 옥수수 재배지역인 콘벨트(Corn Belt)다. 산지 EL은 농가에서 곡물을 사서 건조하고 저장하는 장치이지만 안정적으로 곡물을 구매할 수 있는 주변 농가와의 인맥도 의미한다.
여기서 모인 곡물은 강변 EL을 통해 미시시피 강을 따라 운반된다. 이 장치는 수량이 많아 언제나 임대할 수 있다. 문제는 수출항구에 설치된 수출 EL이다. 절반가량을 메이저사들이 가지고 있어 우선 이 중 한개에 지분참여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일본처럼 농장 자체를 확보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미 외국인이 농장을 살 수 없도록 곡창지대를 갖고 있는 나라들의 법들이 많이 바뀌었다. 30년을 추진해 온 일본과 단순 비교는 힘들다.
→국제곡물회사를 통해 식량확보 이외에 물가안정 기능은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보는가.
-올해는 콩과 옥수수를 각 5만t씩 들여오는데 우리나라가 연간 곡물을 1400만t씩 수입하니 적은 비중이다. 하지만 2015년에는 이 시스템으로 400만t(전체 수입량의 30%)을 들여오게 되고 전문회계법인은 5% 정도 가격 인하효과를 예측하고 있다. 국제곡물회사 자체의 손익분기점은 법인을 세우고 3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겠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우리 농산물 수출이 힘들다는데.
-우려와 달리 일본 지진 이전보다 오히려 일본으로 농산물 수출 물량이 늘었다. 일본 지진이 나기 전인 지난 3월 11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수출 물량이 22.2% 늘었다가 일본 지진 이후 17.5%까지 줄었다. 하지만 4월19일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9%가 증가했다. 화훼류나 파프리카 수출은 줄었지만 라면, 생수, 비스킷 등이 3배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4월 19일 기준으로 전 세계 수출물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3% 증가한 19억 1700만 달러(약 2조 1000억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다변화는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2월에 다녀온 중동의 경우 우리나라 담배, 버섯, 음료, 껌 등이 인기였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많은 농가들이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우려하고 있는데.
-식량과 사료에 쓰이는 곡물은 이미 다 열려있다. 새삼스럽게 영향을 줄 것은 없다. 11년 전인가 쇠고기 시장이 열리면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면 한우가 업그레이드되고 구제역이라는 복병을 만나 그렇지 지금은 캐나다, 브라질 소가 들어와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한·중·일 FTA가 체결되면 동양 3국이 경제적으로는 긴밀하게 결합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중국에서 양질의 원료를 구입해 최상의 농산물을 중국 최고 부유층과 일본에 팔면 된다. 미국, 유럽은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아시아 수출을 위해 물류 비용면에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다.
●FTA 체결돼도 영향 없어
→aT가 물가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농협은 전국 조직망이 있어 가격이 폭락할 때 공급을 늘리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반면 aT는 이상기후 등으로 농작물 피해를 본 상황에서 당장 동일한 작목을 재배 못할 때 도시의 거대한 소비층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유통망을 통해 공급을 늘릴 수 있다. 또 향후 지자체와 협력해 지방 도매시장(34개)의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추가할 말이 있다면.
-올해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회사명이 한국농수산식품공사로 바뀐다. 국제곡물회사를 통한 식량안보시스템 구축, 한식의 세계화 등 업무를 본격 수행해 공사가 재탄생하는 원년으로 삼고자 한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프로필
▲1954년 경남 남해 ▲경남고, 서울대 농과대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동국대 행정학 박사 ▲행시 23회 ▲청와대 행정관, 내무부 민간협력·교부세 과장, 경남 진주 부시장, 경남 남해 군수 ▲산림청장, 농림수산식품부 2차관
2011-04-2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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