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혜택 크지만 동네병의원 경영난 우려
보건복지부가 4일 노인요양시설 등을 포함해 의료취약지를 대상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대폭 늘리기로 해 10년째 큰 진전을 보지 못했던 원격의료사업이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정보통신기술(ICT)과 의료 기술을 접목하는 원격의료는 혜택을 보는 사람이 많지만 동네 병의원의 폐업을 우려한 의료계가 반대하고 있다.
더욱이 의사들의 반대로 원격의료 허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18,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도 제출됐지만,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통과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복지부 역점 사업이지만…국회·의료계도 ‘싸늘’
복지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원격의료 사업은 현행법상 규정된 의사와 의료인 간 원격 자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의사와 환자 간에 진행되는 원격의료를 말한다.
원격의료 사업은 2006년 이후 거의 매년 보건복지부 업무 계획에 포함될 만큼 정부가 크게 관심을 쏟는 정책 중 하나다.
구체적인 논의는 2006년 7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하기로 하면서 시작됐고 2010년 4월 규제개혁의 하나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본격화됐다.
의료계는 원격의료가 의료 전달 체계 자체를 흔드는 일일 뿐 아니라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며 끊임없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나 복지부는 원격의료 이용 대상이 재진 환자, 상시 관리가 필요한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 퇴원 후 후속 처치가 필요한 환자, 의료취약지 환자 등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원격의료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결국 2014년 3월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원격의료 및 의료 투자 활성화 대책에 반발해 집단 휴진에 돌입하면서 크게 표출됐다.
의료계 집단 휴진은 6개월간 의·정이 함께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입법에 반영하기로 하면서 철회됐으나 이후 양측의 협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내다 결국 복지부 독자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원격의료 시행을 위해 필요한 의료법 개정안 통과도 갈 길은 멀다.
복지부는 18, 19대 국회에 원격의료 허용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상임위에 상정조차 못하고 모두 국회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20대 국회의 분위기도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지난달 6일 “원격의료나 ‘드론택배’ 얘기를 하는데, 이는 국회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시행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밝히며 원격의료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에 의료취약지의 의료 접근성 강화 등을 위해 원격의료 도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알리고 꾸준히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 “의료취약지 원격의료 효용성 높아” vs “응급 이송체계 정비가 더 효과적”
사업 추진 속도가 더디다는 주장을 의식한 복지부는 시범사업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꼼꼼히 정비하고 있지만 언제 정확히 원격의료 사업을 시행할 수 있을지는 말을 아끼고 있다.
대신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만족도가 높은 만큼 사업 대상을 늘리고 그 결과를 홍보해 원격의료가 의료서비스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꾸준히 알린다는 계획이다.
복지부가 진행한 2단계 원격의료 시범사업 결과 보고서를 보면 당뇨 등 만성질환자 대상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 참가자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8.8점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아울러 도서벽지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원격진료 서비스 참가자의 서비스 만족도도 8.3점, 노인요양시설 대상 원격진료 서비스 참가자의 만족도도 8.79점에 달했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차 시범사업 결과를 두고 정보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있어 확실히 보완했다”며 “원격의료 과정에서 오진이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내용도 새롭게 국회에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료계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약 3만 개에 달하므로 정부가 원격의료 도입 근거로 내세우는 의료 접근성에 큰 문제가 없다”며 “도서 산간벽지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원격의료보다 닥터 헬기 확충 등 응급의료 이송체계부터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의협 관계자는 “아무리 시범사업이라고 하지만 고령자를 대상으로 원격의료가 어느 정도 효율성이 있는지 아직 완벽하게 입증이 되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노인요양시설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노인요양시설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엄밀히 말해 노인요양시설 촉탁의가 시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에게 처치 방법을 지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행법에서도 용인되는 범위 내에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노인요양시설 촉탁의 활동을 해도 비용 보전이 거의 없다는 의료계 의견을 수용해 촉탁의 활동비를 진료 인원별로 지급하고 비용 청구도 의사가 직접 건강보험 공단에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도 개선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의료계에서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의료전달체계가 왜곡되고 대형 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심해져 동네의원 경영이 악화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정안에 군·교도소 환자, 수술 후 관리가 필요한 재택환자를 제외하고는 원격의료 시행을 동네의원만 가능하도록 명시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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