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를 열다] 1971년 원래 자리에 있던 독립문

[DB를 열다] 1971년 원래 자리에 있던 독립문

입력 2013-03-29 00:00
수정 2013-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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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은 1896년 독립협회가 모금 운동을 벌여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 자리에 프랑스의 에투알 개선문을 본떠서 세웠다. 서재필이 스케치했으며 이를 토대로 독일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해서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 건축했다고 한다. 문 앞에는 영은문의 주초(柱礎)였던 두 돌기둥이 있다. 독립문은 1979년 성산대로를 건설하면서 원래 있던 자리에서 북서쪽으로 70m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고, 원래 자리에는 독립문지라는 표지판을 묻어 놓았다.

사진은 1971년 12월 1일 촬영한 것으로 원래 자리에 있던 독립문의 모습이다. 사진에서 보듯 독립문은 도로의 중앙에 있었으며 버스들이 로터리를 돌듯 독립문을 돌아가고 있다. 당시에는 사직터널과 금화터널이 뚫리지 않아 경복궁에서 독립문으로 오려면 서대문 사거리로 돌아서 와야 했다. 사진에서 도로를 따라 멀리 무악재가 보이고 왼쪽 뒤에 서대문형무소가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7년 경성감옥으로 완공돼 수많은 독립투사가 수감되었던 곳이며, 광복 후에도 구치소로 쓰이다 1987년 의왕으로 구치소가 옮겨가고 나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구치소 건물들은 대부분 헐렸으며 최근에야 복원됐다. 구치소 앞쪽의 상가 건물들은 모두 철거돼 서대문 독립공원 부지로 이용되고 있다. 오른쪽 인왕산 아래 주택들도 재개발되어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2013-03-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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