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근 왜 이렇게 재원 대책도 불명확한 복지 정책들이 많이 나오는가? 대다수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미래에 대해 희망이 없어지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작년에 경제 성장이 6% 되었다고 하나, 많은 국민들은 성장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수출 대기업들은 유례 없는 고성장을 누리고 있으나 대다수 중소기업, 내수기업들은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대기업 근로자는 막대한 보너스를 즐기지만 하청기업 근로자는 실질소득 감소를 겪고 있다. 명품 매출은 크게 늘어난다는데, 서민들은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식비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급속한 저출산 원인은 취직도 안 되고, 높은 육아∙교육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각 분야에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의 부담을 덜어준다는데 누가 마다할 것인가? 현재와 미래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체제에 대해 애착을 가질 리가 없다. 이대로 가면 점점 많은 사람이 시장경제체제에 대하여 불신하게 될 것이다. 양극화가 완화되고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시장경제체제가 유지될 것이다.
그러면 누가 현재의 시장경제체제 유지에 앞장서야 할 것인가? 최근 세계화와 규제 완화로 가장 혜택을 보는 계층들은 수출기업, 대기업 등일 것이다. 이들 계층이 잘나가는 것은 물론 열심히 하여 경쟁력을 확보한 결과이겠으나 국가가 이를 뒷받침한 것도 큰 요인이다. 그런데 빈부 차이가 커지고 사회 불만세력이 늘어 기업 활동을 규제하고 사유재산을 제한하는 입법들이 성행한다면, 과연 기업들이 자기만 잘한다고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예컨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같이 사기업을 국유화하고 기업 활동을 통제하는 상태가 되면 경쟁력 있는 대기업인들 제대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우리 사회가 그렇게 극단적인 사태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득의 양극화, 높은 청년실업, 저출산이 지속된다면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대중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 체제에서 혜택받는, 가진 사람들이 체제 수호를 위해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작은 것을 더 가지려다 더 큰 것을 잃게 된다. 미국의 경우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 부자들이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거나 재산을 기부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부유층,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절실하다. 기부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회사 이름으로 기부하면서 기업주가 생색내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은 대부분 개인 재산에서 기부한다. 하청기업에 대한 지나친 가격 인하 요구, 계열사에 대한 몰아주기로 중소기업을 고사시키는 행위도 자제되어야 한다. 상속∙증여세를 제대로 내 부의 정당성을 보여야 한다. 게이츠와 버핏은 미국 400대 억만장자들에게 개인 재산의 절반을 기부토록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인가? 과거 경주 최부자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주변 100리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들 때 땅 사지 말라.”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 따뜻한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2011-06-30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