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할머니 듀오/김영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할머니 듀오/김영진

입력 2022-04-14 20:36
수정 2022-04-15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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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듀오/김영진

목욕탕에 다녀오시나, 할머니 두 분
껍질 벗긴 삶은 계란마냥
하얗고 말간 얼굴로
서로 정담 나누시며 걷는다

동생, 이제 집에 가면 뭐 할랑가?
뭐 하긴요, 시장에나 갈라요
장에는 뭐 하러 갈라고 그란가?
영감 팔러 갈라 그라요
엥, 얼마에 팔라고 그란디?
오천만 원만 주면 팔라고 그라요
오메야, 팔릴랑가 모르것네
그란디 그 돈 받으면 어디따 쓸라고?
천만 원짜리 영감 있으면 바꿀라고 그라요
목욕 바구니 나란히 든 두 분
구부러진 등 위로 햇살이
깔깔깔 빛난다

목욕 가방을 든 해맑은 얼굴의 두 할머니. 봄 길 걸어가며 얘기 나누신다. 집에 가면 뭐 할 건가? 목욕탕에서는 서로 등 밀어 주고 요구르트도 먹고 찐 달걀도 먹고 세상 사는 이야기 참 좋았을 터였다. 집은 목욕탕보다 더 심심한 곳일지 모른다. 영감 팔러 시장에 간다는 답이 따른다. 평생 애를 썩인 영감은 오늘도 할머니의 속을 썩였을 것이다. 얼마에 파는데? 5000만원. 동무 할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팔리면 뭐할 텐데? 1000만원짜리 영감 있으면 바꿀 거다. 대화 속에서 메주 뜨는 눅진한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할머니는 장에 가서 속을 썩인 영감이 좋아하는 국을 끓이기 위해 무와 쑥갓, 동태 몇 마리를 사실지도 모른다.

곽재구 시인
2022-04-1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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