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외국계 먹잇감’ 전락 경계해야

[사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외국계 먹잇감’ 전락 경계해야

입력 2019-12-29 21:22
수정 2019-12-30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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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악질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최근 의결한 ‘경영 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경영진의 횡령, 배임, 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됐음에도 개선 의지가 없으면 국민연금이 이사 해임,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부터 제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계는 경영 활동 위축을 내세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에는 ‘산업의 특성과 기업의 사정’ 등에 따라 주주 제안을 하지 않거나 철회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추가됐다. 기금운용위는 당초 지난달 13일 가이드라인 시안을 공개한 뒤 같은 달 29일 의결하려 했으나 경제계가 강하게 반대하자 이러한 내용을 보완했다는 점에서 경제계의 요구가 묵살됐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수탁자책임원칙’(스튜어드십코드) 도입 후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으나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실제 국민연금이 지난해 반대 의결권을 던진 주총 안건 539건 중 부결은 0.9%(5건)에 불과했다. ‘거수기’ 역할에 그쳤던 국민연금이 국민을 대신해 주주 활동을 충실히 한다면 투자 기업의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국민연금의 수익성도 높일 수 있다. 기업 역시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숱한 갑질 논란과 함께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한진그룹 총수 일가 등을 보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이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자칫 외국계 투자사들이 손해를 볼 경우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을 핑계로 내세워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개입했다며 ISD를 제기한 상태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개입해선 안 되고, 기금운용위의 투명성도 함께 높여야 한다.

2019-12-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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