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언파만파] ‘스러운’ 줄여 쓰기/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의 언파만파] ‘스러운’ 줄여 쓰기/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 기자
입력 2021-12-19 20:28
수정 2021-12-20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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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밤’의 ‘ㅂ’과 ‘아버지’의 ‘ㅂ’은 조금 다르다. 소리가 나는 환경이 바뀌면서 다른 소리가 된다. ‘밤’의 ‘ㅂ’은 무성음, 즉 성대가 울리지 않는 소리다. ‘아버지’의 ‘ㅂ’은 성대가 울리는 유성음 ‘ㅏ’와 ‘ㅓ’ 사이에 있다. 그렇다 보니 같은 유성음이 된다. 이런 현상은 동사나 형용사가 활용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유성음이 되는 ‘ㅂ’은 소리가 약해지면서 아예 다른 음으로 변하기도 한다. ‘ㅜ’로 바뀌기도 하고, ‘ㅗ’로 달라지기도 한다. ‘가깝다’는 뒤에 ‘어’가 오면 ‘ㅂ’이 ‘ㅜ’로 바뀌면서 ‘가까워’가 된다. ‘돕다’는 ‘ㅂ’이 ‘ㅗ’로 바뀌어 ‘도와’가 된다. ‘간지럽다’는 ‘간지러워’, ‘즐겁다’는 ‘즐거워’처럼 쓰인다. ‘입다’, ‘접다’, ‘좁다’ 같은 말들과 다르다. 이 말들은 뒤에 ‘ㅓ’나 ‘ㅏ’가 와도 ‘ㅂ’이 그대로여서 ‘입어’, ‘접어’, ‘좁아’처럼 본래 형태를 유지한다. 맞춤법도 바뀐 것은 바뀐 것대로, 그렇지 않은 것은 본래대로 쓰이는 현실을 인정한다. 같은 ‘굽다’ 형태이지만 ‘(등이) 굽다’와 ‘(고기를) 굽다’가 각각 ‘굽어’, ‘구워’로 쓰이는 언어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명사 뒤에 ‘-스럽다’가 붙는 말들이 많다. ‘자연스럽다, 사랑스럽다, 걱정스럽다…’ 같은 형용사들이다. 이 말들의 ‘ㅂ’도 뒤에 유성음 ‘ㅓ’가 오면 자연스럽게 ‘ㅜ’로 바뀌어 ‘자연스러운’, ‘사랑스러운’, ‘걱정스러운’으로 변한다. 이를 두고 수없이 질문이 이어진다. ‘자연스런’, ‘사랑스런’, ‘걱정스런’은 잘못된 표현이냐고 묻는다. 국어 선생님 대부분, 국가기관인 국립국어원의 답변은 ‘-스러운’이다. 이유는 ‘ㅂ’이 ‘ㅜ’로 변한 것이어서다. 그런데 언어생활의 편리를 위해 ‘ㅂ’을 ‘ㅜ’로 바꿨듯이 우리는 일부 ‘-스러운’을 줄여 ‘-스런’으로 오랫동안 써 왔다. 1968년부터 2007년까지 40년 가까이 낭독됐던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도 ‘자랑스런’은 규범 같았다.

“사고 싶다마는”에서 ‘-마는’은 ‘-만’으로 흔히 줄인다. ‘서울에서는’의 ‘-에서는’은 ‘-에선’으로, ‘하기는’의 ‘-기는’은 ‘-긴’, ‘해돋이는’의 ‘-이는’은 ‘-인’, ‘빠르기는’의 ‘-기는’은 ‘긴’으로 상황에 따라 때때로 줄여 말하고 적는다. ‘-스러운’을 ‘-스런’으로 줄이는 것과 다른 점은 ‘ㅡ’와 ‘ㄴ’을 탈락시켰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줄이는 것에 대해 누구도 탓하거나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스러운’을 ‘-스런’으로 줄이는 것도 ‘-에선’ 같은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을 만들어 가는 주체는 개인이고 우리들이다. 국가는 현실과 현상을 파악하고 관리한다. 원활한 소통, 편리한 언어생활을 위해 지원한다.

2021-12-2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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