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막말 선거, 美 비주류 매체들 통해 증폭 …음모론 기승

트럼프 막말 선거, 美 비주류 매체들 통해 증폭 …음모론 기승

입력 2015-12-14 08:54
수정 2015-12-1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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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인터넷매체 미검증 보도 양산…트럼프 여과 없이 전달”

“9·11 직후 수천 명의 무슬림이 환호했다”, “오바마가 시리아 난민 25만 명을 받기로 했다”, “오바마는 미국 태생이 아니고 무슬림이다”…

미국 정치의 통념을 파괴하고 있는 ‘트럼프 현상’ 속에서 부정확한 보도나 음모론을 양산해온 미국의 일부 비주류 매체들이 ‘물 만난 고기’와 같은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쏟아내는 미검증 정보를 제공하는 ‘출처’가 되면서 그의 주장을 삽시간 내에 인터넷 공간에 퍼뜨려주는 ‘확성기’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미국의 유력 워싱턴 포스트(WP)는 13일(현지시간)자 신문에 “‘변두리 뉴스’(fringe news)가 주류에 들어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같은 현상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들 비주류 온라인 언론은 음모론의 대가로 불리는 알렉스 존스가 만든 ‘인포워즈’(Infowars.com), 지난 7월 텍사스 계엄령 선포설을 확산시킨 드러지 리포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오바마 버스북’(Obamabirthbook.com), 트럼프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브레이트바트’나 ‘리얼 뉴스 라잇 나우’ 등의 인터넷 매체들이다.

음모론의 산실로 알려진 싱크탱크인 ‘안보정책센터’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

극보수 성향을 보이는 매체들은 백신접종이 전염병이나 질병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거나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론을 조장하고 이슬람 율법(샤리아법)이 곧 미국에서 시행된다는 식의 미검증 주장을 펴와 일반 대중들로부터는 거의 외면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뉴스의 중심에 선 트럼프가 인터넷 공간을 지배하는 이 매체들의 보도를 ‘여과없이’ 전달하거나 인용하면서 모처럼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게 WP의 보도다.

일례로 트럼프가 지난 9·11 테러 직후 뉴저지 주에 살던 수천 명의 무슬림이 환호성을 질렀다고 주장한 것은 인터넷 공간에서 수년간 떠돌던 것이었다는게 WP의 설명이다.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25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할 것이라는 주장을 편 것은 지난 9월 ‘리얼 뉴스 라잇나우’의 보도가 그 출처였다.

흑인에 의한 백인이 살해되는 비율이 81%에 달한다는 인종주의적 주장을 편 것은 트위터 지지자들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 의혹, 즉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 아니어서 애초부터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었다는 주장을 제기한 것은 인터넷 매체인 ‘버서스’(Birthers.org)나 ‘오바마 버스북’의 보도와 맞물려 있다.

트럼프는 무슬림 입국금지 발언이 논란을 빚자 그 근거로 안보정책센터의 여론조사를 인용했다. 이 센터는 오바마 행정부에 ‘무슬림 형제단’의 회원들이 침투했다는 식의 근거 없는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양산해온 곳이라고 WP는 밝혔다.

트럼프와 이 매체들은 서로를 밀고 당겨주는 일종의 상부상조 관계를 맺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로서는 이 매체들이 자신의 주장을 인터넷 공간에 확대 재생산하는 ‘통로’가 되고 있고, 주류에 밀려 뒷전에 있던 이들 매체로서는 트럼프가 자신들의 존재감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되고 있다.

트럼프가 지난주 ‘인포워스’ 창업자인 알렉스 존스와 인터뷰를 가진 것은 이 같은 밀월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존스는 라디오 방송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트럼프에게 “청취자 대부분이 당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힘을 북돋웠고, 고무된 트럼프는 “당신의 명성은 놀랄만하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화답했다는 후문이다.

존스는 인터넷 언론계의 ‘트럼프’로 알려진 인물로, 실제 트럼프는 그의 아이디어 일부를 받아들였다고 WP는 보도했다.

WP는 “트럼프가 근거가 불확실한 팩트를 선거에 이용한 첫 정치인은 아니지만, 기성 뉴스에 대한 광범위하고 초당파적인 불신과 디지털 대중에 의해 생산되는 가상현실을 이용한 첫 정치인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같은 매체들의 미검증 보도가 진위와 관계없이 일정정도 먹혀들고 있는 점이다.

일례로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태어났고 기독교 신자임을 누차 고백했는데도, 보수 지지층 일부에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CNN이 ORC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조사대상자의 20%가량이 오바마 대통령의 국외출생설을 믿고 있었고 29%는 오바마 대통령을 무슬림이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기존 정치권의 공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트럼프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에 대한 맹목적 지지층처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을 듣고 싶어하는 특정 성향의 그룹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전문지인 폴리티팩트의 편집장인 앤지 드로브닉 홀런은 WP에 “인터넷은 유사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설혹 허풍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아이디어와 이론을 주고받으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며 “예를 들어 달착륙이 허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에 들어가 얼마든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가 전략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말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제프리 햄슬리 시라큐스대학 부교수는 WP에 “대선 후보들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기반을 상대로 말하는 것”이라며 “설령 불확실한 정보를 말한다고 하더라고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제 주류신문과 TV가 통합된 뉴스를 만들어내는 시대는 지났다”며 “사람들은 뉴스를 골라서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고, 이것이 자신들의 믿음을 강화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WP는 “잘못된 정보를 축출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좋은 정보는 나쁜 정보를 밀어낼 수 있지만, 그것은 진실이 거짓보다 ‘섹시’(sexy)할때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와 언론이 겪는 이 같은 기현상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정치와 언론이 이미 겪고 있거나, 곧 겪게 될 ‘또다른 자화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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