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 따지는 한국, 산업화세대 대접은?
먼저 자문자답 하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무엇을 기대했나. ‘산업화 세대의 신화’라는 사람에게. 개인적인 기대를 꼽으라면 그 세대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 세대의 빛나는 신화를 뒷받침한, 묵묵한 일꾼들을 위무(慰撫)해줄 의무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럴 기미는 별로 없어 보인다.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노인들에게 공돈을 못주겠다고 하더니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마저 줄이는 방안도 검토한단다.비교해보자. 대통령이 휴가지에 들고갔다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예를 든다. 조던이 그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던 것은 ‘다섯 명이 빨간 공 적당히 튀기면서 주고받다가 그물에 집어넣는 기술을 높게 쳐주는 사회 덕분’이다. 경쟁을 이겨낸 자유시장의 영웅은, 그 경쟁의 장을 제공해주는 사회적 조건과 배경 덕을 본다는 얘기다.

극단 차이무 제공
산업화 세대에게 우리가 공정한 대우를 해주고 있는지 되묻는 연극 ‘썽난 마고자’에서 황 영감(오른쪽)과 최 여사가 능청스러운 춤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극단 차이무 제공
극단 차이무 제공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워런 버핏도 자신의 부와 명성에 대해 “금융·주식시장이 발달한 미국에서 태어난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조던은 세금을 더 내고, 버핏은 아낌없이 재산을 기부한다.
일본 자민당의 전후 50년 집권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전쟁세대를 깍듯이 모셨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2차대전 총동원 체제를 겪고 피폭까지 당했던 그 세대들의 노고에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 차원의 보상을 제공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체성과 고도성장 신화를 칭송하는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식민지, 분단, 전쟁, 개발독재 시절을 살아낸 산업화 세대들에게 어떤 보상을 제공했던가. 그들 중 일부는 지하철이나 동네어귀에서 폐지를 줍고 있다.
다음달 3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무대에 오르는 ‘썽난 마고자’(민복기 작·연출, 극단 차이무 제작)는 이 문제를 다룬다. G20(주요 20개국) 회의를 앞두고 정부는 탑골공원 성역화 작업에 나선다. 실제 목적은 ‘국격’을 위해 허름한 차림의 노인네들을 탑골공원에서 몰아내자는 것이다. ‘썽’이 난 탑골공원 ‘마고자들’은 철거반대 투쟁에 돌입한다.작품이 너무 무거울 것 같다고? 그런 걱정은 접어도 좋다. 순도 100% 코미디다. 현실 풍자가 강렬해 공연 내내 마음껏 웃겨준다.
특히 탑골공원 사수를 위해 골리앗 농성, 아니 ‘등나무 휴게터 농성’을 벌이는 전직 선생님 황 영감(이중옥), 방앗간 사장 이 영감(송재룡), 마도로스 출신 성 영감(성요한), 미모의 최 여사(공상아)가 선보이는 앙상블은 최고다.
애드리브마저도 능청스럽다. 그 중에서도 김 여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인 3명이 선보이는 만담 장면은 백미로 꼽을 만하다. 동시대를 다루는 예술은 반시대적이라는, 프랑스 문학 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명제도 함께 음미해보길. 2만~2만 5000원. (02)747-101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09-1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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