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아 본 적도, 혹여 아프지 않을까 밤잠 설치며 돌봐 본 적도 없는, 홀로 사는 사제도 스러져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목소리가 떠올라 미칠 것 같습니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성소국장 상지종(49) 신부가 꽃도 피우지 못한 삶을 마감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부모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상 신부는 자신이 강론을 맡았던 지난 5일 서울 대한문 거리미사에 참석하면서 “오늘만은 울지 말자”고 마음먹었지만 다짐은 너무나 힘없이 무너졌다. 편지를 읽으면서, 성호를 그으면서 왈칵왈칵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그는 편지에 “억울한 죽음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죄 많은 사제의 편지를 읽어주셔서 고맙다. 끝까지 함께하면서 아이들이 원했던 세상, 여러분이 원하는 세상을 함께 보듬어 가겠다”고 썼다.
15일 의정부교구청에서 만난 그는 나지막하면서도 시종 또박또박 세월호와 한국사회를 이야기했다. “세월호 참사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안 됩니다. 최근 몇 년만 해도 해마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세입자와 진압경찰관이 불에 타 죽은 용산참사, 많은 생명을 앗아간 쌍용자동차,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문제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본질은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는 사회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할 돈과 권력이 반대로 인간을 희생시키면서 힘을 키워가는 게 현실입니다.”
그는 “이런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의 가르침도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다. 거꾸로 전도된 사람과 자본, 권력의 관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고 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일을 수없이 겪고 나서도 또다시 세월호 참사가 터진 것도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생명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2012년 간암 판정을 받은 신학교 동창신부에게 자신의 간을 3분의 2나 선뜻 떼어준 것도, 용산참사와 쌍용차 문제, 4대강, 강정마을 주제로 한 대한문 월요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원래 간이 안 좋은 친구였는데 본당 주임신부를 맡아 성당을 새로 지으면서 과로를 했어요. 평소에 “내 거 떼어 줄 테니 간 걱정 하지 마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말이 씨가 된 거죠. 새 생명을 줬으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라고 했어요. 하하하.” 지금은 상 신부도, 간이식을 받은 동창신부도 모두 건강하다.
생명운동을 중시하는 천주교 사제로서 그가 생각하는 생명은 어떤 걸까. “생명은 생물학적 의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낙태와 배아줄기세포 반대, 사형제 폐지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그쳐선 안 됩니다. 인간의 생명은 육체적 생명뿐 아니라 존엄한 삶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생명, 정치적 생명, 문화적 생명도 있습니다.”
근근이 먹고 살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또 생명은 인간뿐 아니라 창조의 생명의 손길이 깃든 온 세상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예수가 예언자적 삶을 산 것도, 교황 프란치스코가 세상 속에 들어가 양들과 함께 뒹굴면서 양냄새 나는 사제가 되라는 것도 생명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상 신부는 “종교는 생명 문제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함께해야 한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더 보듬고 돌볼지 구체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사람답게 사는 곳이 되려면 생명과 죽음, 살림과 죽임의 길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비인간적인 경쟁 속에서 큽니다. 1등이 되려는 노력이 살림의 길이라 착각하지만 사실은 나만 사는 길입니다. 주위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관심이 없어요. 무관심과 방관이 죽임의 사회를 만듭니다. 세월호 참사에는 우리의 그런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상 신부는 세월호 참사의 수습과 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기억’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천주교에서도 중요한 신학적 용어입니다. 미사가 예수의 최후의 만찬, 십자가 죽음, 부활을 기억하는 것이니까요. 기억은 단순히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삶의 자리에서 현재화시키는 일입니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지만 아파서 잊는다면 희망은 없습니다.”
그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지위고하를 막론한 책임자 처벌, 사회 전반의 개혁도 필요하다면서도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고통치자는 누구보다도 크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은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책임만 묻겠다는 건 통치자다운 태도가 아니죠. 요순시대에는 왕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최고통치자는 위기의 순간에 지혜와 용기를 갖고 발벗고 나서는 자리입니다.”
그는 늦깎이 신부다.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잘 나가는 광고회사에 5년 다니다가 신학교에 들어갔다. 대학 2∼3학년부터 사제의 길을 고민하다가 졸업과 동시에 신학교에 편입하려고 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회사에 취직했다. 나중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신학교를 간다고 하자 아버지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어떻게 막겠느냐”고 했다.
그런 그에게 사제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계획을 물었다. “그냥 신부로 사는 거죠.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미사 드리고 강론하고 교육하고……예전 명동성당처럼 새로운 생명의 마당인 된 대한문 앞 미사에도 열심히 나갈 겁니다. 좀 더 많은 국민들이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슴 아픈 편지를 쓰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합니다.”
연합뉴스
천주교 의정부교구 성소국장 상지종(49) 신부가 꽃도 피우지 못한 삶을 마감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부모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상 신부는 자신이 강론을 맡았던 지난 5일 서울 대한문 거리미사에 참석하면서 “오늘만은 울지 말자”고 마음먹었지만 다짐은 너무나 힘없이 무너졌다. 편지를 읽으면서, 성호를 그으면서 왈칵왈칵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그는 편지에 “억울한 죽음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죄 많은 사제의 편지를 읽어주셔서 고맙다. 끝까지 함께하면서 아이들이 원했던 세상, 여러분이 원하는 세상을 함께 보듬어 가겠다”고 썼다.
15일 의정부교구청에서 만난 그는 나지막하면서도 시종 또박또박 세월호와 한국사회를 이야기했다. “세월호 참사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안 됩니다. 최근 몇 년만 해도 해마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세입자와 진압경찰관이 불에 타 죽은 용산참사, 많은 생명을 앗아간 쌍용자동차,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문제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본질은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는 사회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할 돈과 권력이 반대로 인간을 희생시키면서 힘을 키워가는 게 현실입니다.”
그는 “이런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의 가르침도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다. 거꾸로 전도된 사람과 자본, 권력의 관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고 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일을 수없이 겪고 나서도 또다시 세월호 참사가 터진 것도 그런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생명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2012년 간암 판정을 받은 신학교 동창신부에게 자신의 간을 3분의 2나 선뜻 떼어준 것도, 용산참사와 쌍용차 문제, 4대강, 강정마을 주제로 한 대한문 월요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원래 간이 안 좋은 친구였는데 본당 주임신부를 맡아 성당을 새로 지으면서 과로를 했어요. 평소에 “내 거 떼어 줄 테니 간 걱정 하지 마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말이 씨가 된 거죠. 새 생명을 줬으니 나를 아버지라 부르라고 했어요. 하하하.” 지금은 상 신부도, 간이식을 받은 동창신부도 모두 건강하다.
생명운동을 중시하는 천주교 사제로서 그가 생각하는 생명은 어떤 걸까. “생명은 생물학적 의미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낙태와 배아줄기세포 반대, 사형제 폐지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그쳐선 안 됩니다. 인간의 생명은 육체적 생명뿐 아니라 존엄한 삶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생명, 정치적 생명, 문화적 생명도 있습니다.”
근근이 먹고 살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또 생명은 인간뿐 아니라 창조의 생명의 손길이 깃든 온 세상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예수가 예언자적 삶을 산 것도, 교황 프란치스코가 세상 속에 들어가 양들과 함께 뒹굴면서 양냄새 나는 사제가 되라는 것도 생명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상 신부는 “종교는 생명 문제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함께해야 한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더 보듬고 돌볼지 구체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사람답게 사는 곳이 되려면 생명과 죽음, 살림과 죽임의 길을 혼동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비인간적인 경쟁 속에서 큽니다. 1등이 되려는 노력이 살림의 길이라 착각하지만 사실은 나만 사는 길입니다. 주위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관심이 없어요. 무관심과 방관이 죽임의 사회를 만듭니다. 세월호 참사에는 우리의 그런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상 신부는 세월호 참사의 수습과 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기억’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천주교에서도 중요한 신학적 용어입니다. 미사가 예수의 최후의 만찬, 십자가 죽음, 부활을 기억하는 것이니까요. 기억은 단순히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삶의 자리에서 현재화시키는 일입니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지만 아파서 잊는다면 희망은 없습니다.”
그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지위고하를 막론한 책임자 처벌, 사회 전반의 개혁도 필요하다면서도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고통치자는 누구보다도 크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은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책임만 묻겠다는 건 통치자다운 태도가 아니죠. 요순시대에는 왕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최고통치자는 위기의 순간에 지혜와 용기를 갖고 발벗고 나서는 자리입니다.”
그는 늦깎이 신부다.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잘 나가는 광고회사에 5년 다니다가 신학교에 들어갔다. 대학 2∼3학년부터 사제의 길을 고민하다가 졸업과 동시에 신학교에 편입하려고 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회사에 취직했다. 나중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신학교를 간다고 하자 아버지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어떻게 막겠느냐”고 했다.
그런 그에게 사제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계획을 물었다. “그냥 신부로 사는 거죠.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미사 드리고 강론하고 교육하고……예전 명동성당처럼 새로운 생명의 마당인 된 대한문 앞 미사에도 열심히 나갈 겁니다. 좀 더 많은 국민들이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슴 아픈 편지를 쓰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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