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존속한 후백제 왕조는 왕궁이 어디였을까? 수도가 지금의 전주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정작 왕궁은 좀처럼 흔적을 드러내지 않아 애를 태웠다.
후백제 왕궁 찾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국립전주박물관(유병하)이 후백제 역사 복원을 위한 기반 연구 과정에서 미궁에 빠진 도성은 지금의 전주시 노송동 일원임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다만 박물관이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전주부사와 같은 성읍지와 지적원도, 1938년 만든 전주시 도시계획도, 1948년부터 최근까지의 항공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종합적으로 비교·검토한 결과 후백제 도성의 성벽을 확인했고, 이를 바탕으로 후백제 도성의 형태와 구조, 성벽의 축조 방식, 문지와 궁성의 위치, 도성의 규모와 방어체계를 규명해냈다고 발표했다.
이번 성과를 토대로 박물관은 올해부터 10년에 걸쳐 후백제 도성, 유적과 유물, 대외관계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조사·연구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유병하 관장은 말했다.
특히 후백제 유적과 유물은 물론 대외관계 연구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후백제 도성의 실체 확인과 내부 발굴 없이는 어렵다는 인식 아래 후백제 궁성과 도성의 실체 확인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후백제 궁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반대산 일대의 옛 토성, 물왕멀 일대, 동고산성, 전주부성, 인봉리 일대 등을 지목하는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박물관은 이번 기초 조사 결과 후백제 도성은 전체 모양이 반월형으로 왕궁이 있는 핵심 구역인 궁성(宮城)과 그것을 감싼 내성(內城), 그리고 수도 전체를 두른 나성(羅城) 개념의 외성(外城)이라는 3중 방어벽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도성은 구릉 지대를 성벽으로 최대한 활용하고 하천을 성벽의 경계 혹은 해자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궁성이라는 견해도 있었던 반대산 옛 토성은 도성의 북쪽을 방어하기 위한 옹성 역할을 했다고 추정했다.
나아가 후백제는 도성 외곽에 서고산성(황방산성), 구억리산성, 동고산성, 남고산성 등을 두어 든든한 방어체계를 구축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박물관은 강조했다.
박물관은 이번 연구를 통해 확인한 후백제 궁성의 서벽 추정지인 전주영상정보진흥원 토축(흙으로 쌓은 성벽)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유 관장은 “이 조사는 도시화로 파괴되는 후백제 유적에 대한 관심과 함께 보존 여론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후백제 왕궁 찾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국립전주박물관(유병하)이 후백제 역사 복원을 위한 기반 연구 과정에서 미궁에 빠진 도성은 지금의 전주시 노송동 일원임을 확인했다고 29일 밝혔다.
다만 박물관이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전주부사와 같은 성읍지와 지적원도, 1938년 만든 전주시 도시계획도, 1948년부터 최근까지의 항공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종합적으로 비교·검토한 결과 후백제 도성의 성벽을 확인했고, 이를 바탕으로 후백제 도성의 형태와 구조, 성벽의 축조 방식, 문지와 궁성의 위치, 도성의 규모와 방어체계를 규명해냈다고 발표했다.
이번 성과를 토대로 박물관은 올해부터 10년에 걸쳐 후백제 도성, 유적과 유물, 대외관계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조사·연구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유병하 관장은 말했다.
특히 후백제 유적과 유물은 물론 대외관계 연구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후백제 도성의 실체 확인과 내부 발굴 없이는 어렵다는 인식 아래 후백제 궁성과 도성의 실체 확인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후백제 궁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반대산 일대의 옛 토성, 물왕멀 일대, 동고산성, 전주부성, 인봉리 일대 등을 지목하는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박물관은 이번 기초 조사 결과 후백제 도성은 전체 모양이 반월형으로 왕궁이 있는 핵심 구역인 궁성(宮城)과 그것을 감싼 내성(內城), 그리고 수도 전체를 두른 나성(羅城) 개념의 외성(外城)이라는 3중 방어벽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도성은 구릉 지대를 성벽으로 최대한 활용하고 하천을 성벽의 경계 혹은 해자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궁성이라는 견해도 있었던 반대산 옛 토성은 도성의 북쪽을 방어하기 위한 옹성 역할을 했다고 추정했다.
나아가 후백제는 도성 외곽에 서고산성(황방산성), 구억리산성, 동고산성, 남고산성 등을 두어 든든한 방어체계를 구축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박물관은 강조했다.
박물관은 이번 연구를 통해 확인한 후백제 궁성의 서벽 추정지인 전주영상정보진흥원 토축(흙으로 쌓은 성벽)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유 관장은 “이 조사는 도시화로 파괴되는 후백제 유적에 대한 관심과 함께 보존 여론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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