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6월 기증받은 복식 7점 특별 공개
고종의 고명딸로 1925년 강제로 일본에 건너갔던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의 유품 가운데 지난 6월 고국에 돌아온 복식이 특별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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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만에 고국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25일 오전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을 찾은 어린이들이 고종의 고명딸로 1925년 강제로 일본에 건너갔던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의 복식 유품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6월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으로 기증받아 이번에 전시되는 복식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 때 남긴 조선왕실 복식 중 일부로 아동용 당의(唐衣)와 치마, 아동용 저고리와 바지, 아동용 속바지, 어른용 반회장(半回裝) 저고리와 치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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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으로 돌아온 덕혜옹주의 복식 유품
25일 오전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을 찾은 관람객들이 고종의 고명딸로 1925년 강제로 일본에 건너갔던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의 복식 유품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6월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으로 기증받아 이번에 전시되는 복식은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 때 남긴 조선왕실 복식 중 일부로 아동용 당의(唐衣)와 치마, 아동용 저고리와 바지, 아동용 속바지, 어른용 반회장(半回裝) 저고리와 치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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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24일 일본 문화학원(文化學園) 복식박물관(이사장 겸 박물관장 오누마 스나오<大沼淳>)으로부터 기증받은 복식 7점을 25일부터 내달 6일까지 박물관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이번에 돌아온 옷가지는 덕혜옹주가 일본에 머물 때 남긴 조선왕실 복식 중 일부로 아동용 당의(唐衣)와 스란치마, 아동용 저고리와 바지, 아동용 속바지, 어른용 반회장(半回裝) 저고리와 치마다.
당의는 조선시대 여성이 입었던 예복이고, 반회장저고리는 깃이나 고름 등에 다른 색 천을 대어 지은 의복을 뜻한다.
덕혜옹주가 돌 기념사진을 찍을 때 착용한 옷과 유사한 초록색 당의는 가슴과 어깨 부위에 용 문양을 금박한 보를 부착했고, 장수를 기원하는 ‘수’(壽) 자와 다복을 상징하는 ‘복’(福) 자를 무늬로 넣었다.
또 당의와 짝을 이루는 붉은색 치마는 일반 치마보다 폭이 넓고 길이가 길며, 여러 글자와 화초 문양이 들어간 단을 덧붙인 점이 특징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측은 “덕혜옹주 복식이 국내에 돌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 유물로 복식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 복식들은 소 다케유키(宗武志)가 1955년 덕혜옹주와 이혼하면서 영친왕 부부에게 돌려보낸 것으로, 이듬해 영친왕 부부가 문화학원의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 학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德川義親)에게 기증하면서 일본에 남았다.
덕혜옹주는 1962년 귀국했지만, 복식은 1979년 개관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 소장해 왔다.
그러다가 1980년대 국내 연구자들이 덕혜옹주 유품을 조사하면서 알려졌고, 2012년 국립고궁박물관이 개최한 덕혜옹주 특별전에서 대여 형태로 들여와 처음 전시됐다.
덕혜옹주는 조선 제26대 임금이자 대한제국 초대황제인 고종이 환갑을 맞은 1912년 낳았다. 어머니는 궁녀 출신 복녕당(福寧堂) 양귀인(梁貴人)이다. 어머니가 정실이 아닌 까닭에 공주 대신 옹주(翁主)라는 호칭이 붙었다.
일본측 요구로 유학을 떠난 덕혜옹주는 1931년 쓰시마 종가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했으나 정신병을 앓는 등 불행한 삶을 살았다. 고국에 온 뒤에는 창덕궁 낙선재(樂善齋) 권역의 수강재(壽康齋)에서 기거하다 1989년 7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덕혜옹주 복식 반환의 계기를 마련했던 김순희 초전섬유·퀼트박물관 관장은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시집간 덕혜옹주의 옷이 돌아와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이번에 전시되는 복식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귀중한 문화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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