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6일】나타샤 캄푸시 지음 은행나무 펴냄
1998년 3월 2일 10살 된 오스트리아 소녀 나타샤 캄푸시는 아침 등굣길에 한 남자에 의해 배달차에 강제로 실려 납치된다. 빈 외곽 한 주택에 숨겨진 5㎡가량의 지하방에서 그녀는 3096일을 감금상태로 지낸다. 그렇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비좁은 지하방에 갇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살아서 탈출하겠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자신을 짓누르는 두려움과 절망과 싸워나갔다. 그리고 18세가 되던 2006년 8월23일 드디어 그녀는 범인이 전화를 받는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한다.‘3096일’(나타샤 캄푸시 지음, 은행나무 펴냄)은 등굣길에 납치돼 햇빛도 안 드는 지하방에서 납치범의 감시속에 10대의 8년을 보내야 했던 한 소녀가 밝힌 442주 2일 동안의 감금 생활과 탈출 뒤 세상과 부딪치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전직 엔지니어인 납치범은 캄푸시에게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했고 반나체로 온갖 집안일을 시키며, 그녀를 학대하고 수백대씩 때리면서 길들이려 했다.
탈출에 성공한 뒤에도 그녀는 대중과 언론의 비뚤어진 관심과 시선과 싸워나가야 했다. 그녀의 사건을 조사하던 수사당국은 그녀가 범인에 대한 이야기를 감추고 있다고 의심했고, 많은 이들로부터는 그녀가 스톡홀름 신드롬(납치된 사람이 납치자를 동정하고 그에 동조하려는 심리상태와 행동)에 빠져 있다는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다.
그녀는 탈출 직후 이름을 바꾸고 잠적하라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갇혀 있었던 그 모든 시간 동안 오직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투쟁해 온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삶(이름을 바꾸고 잠적하는)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온갖 폭력과 고립, 어둠,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는 나타샤 캄푸시로 남았다.”1만 2000원.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2011-09-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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