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23)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23)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입력 2011-10-05 00:00
수정 2011-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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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온 구경꾼 때문에… 낯선 동물 곁에 있다가… 스트레스 쌓인 사슴 생명을 잃다

사슴처럼 스트레스에 약한 동물이 또 있을까. 사슴은 정말 소심하고 겁 많은 동물의 대명사다. 그렇게 조심성이 많기 때문에 험난한 산림과 평원에서도 잘 살아 가는 것인지 모른다. 오랜 수의사 생활 동안 이 녀석들이 저녁에 편안히 누워서 잠자는 것을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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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동물원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히말라야 타알’이란 녀석 두 마리다. 히말라야 고원 등에서 추위를 이기며 사는 강인한 산양과 동물이다. 그동안 암컷만 있어서 새로 수컷 배필을 마련해 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녀석을 건네주는 동물원에서 “무상 분양을 하는 대신에 수컷 두 마리를 모두 가져가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한 마리를 더 데려오게 됐다.

문제는 그로 인해 터져 나왔다. 경쟁이 치열한 산양의 특성상 비슷한 또래 수컷 두 마리는 암컷을 사이에 두고 평화로울 수 없었다. 결국 수컷 둘을 분리해야 했다. 한 마리를 어디에 둘까 한참을 고민하다 사슴사 옆 칸에 놓아두기로 했다. 낙천적인 히말라야 타알은 혼자 있어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사슴사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한참 발정기를 맞은 대장 사슴이 넘버 2인 다른 수사슴을 쫓기 시작한 것이다. 날카로운 뿔로 서로 받아버리면 둘 다 위험한 상황이었다. 결국 넘버 2를 히말라야 타알이 있는 칸으로 피신시키기로 했다.

사단은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히말라야 타알보다 덩치가 큰 넘버 2의 반응은 의외였다. 대장에게 쫓길 때보다 훨씬 더 무서워하면서 철창 밖으로 도망치려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그래도 서로 싸우지는 않으니 저러다 말겠지 하고 퇴근했는데, 다음 날 아침 동물원에선 믿지 못할 광경이 벌어졌다. 수사슴이 죽어 있었다. 정신이 멍해졌다. 죽음의 원인을 알아야 했기에 부검을 해 보니 위와 장에 작은 출혈반들이 가득했다.

속이 바짝 타는 정도의 긴장감이나 슬픈 일 등이 벌어지면 보통 ‘애간장이 녹는다.’고 한다. 여기서 ‘애’는 우리말로 ‘창자’를 뜻하는데 죽은 사슴이 그런 꼴이었다. 죽음의 원인은 다름 아닌 극도의 공포에 따른 스트레스였다.

얼마 전 TV에서 동물원에서 하얀 사슴이 죽었다는 뉴스를 봤다. 길조(吉兆)를 뜻하는 흰 사슴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탓에 스트레스로 죽었다고 한다. 동물들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자살까지 한다. 물론 동물에게 스트레스가 모두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와 긴장이 동물 자신을 보호해 주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무서운 살인자로 돌변할 수 있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lovnat@hanmail.net

2011-10-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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