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병원, 실적 눈먼 보험설계사, 가난한 주민 이해 결합
강원 태백 인구의 0.1%가 150억원대 규모의 사상 최대 보험사기에 연루되면서 지역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보험사기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지역 주민만 400여명이 이른다. 인구 5만여명 남짓한 폐광지역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 ‘보험금 못 타면 바보’..입 소문 타고 확산 = 태백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의 보험사기 범죄는 인구 감소로 적자경영에 시달리던 지역 병원, 실적에 눈이 먼 보험설계사, 가정경제에 어려움을 겪는 주민 등 3자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
적자에 허덕이던 태백지역 3개 병원은 지역 주민 330여명을 허위 환자로 입원시켜 건강보험공단에 17억1천만원의 요양급여비를 청구해 편취했다.
이 과정에서 보험설계사들은 보험 가입 실적을 올리고자 친ㆍ인척에게 무차별적으로 가입하게 한 뒤 허위 입원 수법으로 140억원의 보험금을 챙기게 도왔다.
특히 보험설계사를 중심으로 부부와 자매, 자녀 등의 친ㆍ인척이나 지인을 통해 적게는 2~3개, 많게는 수십개의 보험 상품에 가입한 주민들이 대거 허위 환자로 둔갑하면서 보험사기 규모가 커졌다.
여기다 상당수 주민은 어려운 가정형편속에 범죄라는 인식도 없이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등 생계형 범죄자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태백지역 보험사기의 특징은 일반적인 보험범죄와 달리, 남성보다는 여성이 76%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40~60대 주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담당 경찰관은 “중년의 여성 보험설계사들의 주도 하에 친ㆍ인척 등이 아무런 죄의식없이 보험범죄에 가담하고, 이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규모가 커졌다”고 말했다.
결국 ‘태백에서 보험금을 타지 못하면 바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주민들 사이에 보험금 편취가 만연하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보험범죄로 확대된 셈이다.
◇허위입원 수법 각양각색..단순 염좌라도 무조건 ‘입원환자’ = 병원과 보험설계사 등은 발목을 접질린 단순 염좌 환자도 입원환자로 무조건 둔갑시켜 보험금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허위 입원환자의 병명은 단순 염좌가 77.2%(9천572명)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염좌 환자 대부분은 등산을 하거나 계단을 오르다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졌다는 이유 등으로 병원에 허위입원 했다.
유형별로는 ‘출ㆍ퇴근형’이 41.5%로 가장 많았고, 병원에서 생활하는 ‘나이롱형’ 33%, 차트만 있고 집에서 생활하는 ‘차트형’ 25.5% 등이다.
편취 금액별로 500만원 이상이 35명, 500만~1천만원 46명, 1천만~3천만원 149명, 3천만~5천만원 74명, 5천만원 이상 66명, 1억원 이상이 33명으로 나타났다.
직업별로는 무직과 일용직 비율이 전체의 83%를 차지했다. 이는 생활이 어려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보험범죄의 유혹에 빠졌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K(63)씨는 매월 지급되는 35만원의 지원금보다 많은 보험금을 내면서 5개 보험상품에 가입한 뒤 15차례에 걸쳐 1억2천만원의 보험금을 편취하기도 했다.
대학생인 K(26ㆍ여)씨는 학자금 마련을 위해 보험범죄에 가담해 4천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 챙겼고, L(45ㆍ여)씨는 대학과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의 학비 충당을 위해 자녀 3명 명의로 17개 보험상품에 가입해 4천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 보험사기 각종 기록 경신..대책은? = 인구 5만 명 남짓한 폐광지역에서 주민 400여명이 연루된 사상 최대 규모의 보험범죄가 발생하면서 각종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Y(56ㆍ여)씨는 일가족 5명이 모두 2천30일을 허위 입원해 2억5천만원을 편취했고, 식당을 운영하는 L(56ㆍ여)씨는 15개 보험에 가입해 총 41차례 입원하는 등 최다 입원 기록을 세웠다.
이와 함께 K(56ㆍ여)씨는 지난해 2월 한 달 사이 11개의 보험상품에 집중 가입해 개인 최단기간 최다 보험가입 기록을, 대학원생인 L(29)씨는 19개 보험사로부터 38개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등 개인 최다 보험가입 기록을 남겼다.
이밖에 개인 최대 연속입원 282일, 부부 최다 보험가입금액 211만원, 최다 입원일수 889일 등이다.
이처럼 각종 불명예 기록이 나온 것은 주민 상당수가 보험사기에 대한 범죄의식이 없었기 때문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김동혁 지방청 수사2계장은 “지능화ㆍ전문화돼 가는 보험범죄에 대응하려면 특별법 제정이나 양형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개인병원 운영실태에 대한 보건소 등 감독기관의 실질적인 지도ㆍ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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