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축 의지 약한 것 아니냐”’재계 눈치보기’ 지적도
정부가 11일 고심 끝에 ‘신(新) 기후체제(포스트 2020)’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목표 시나리오를 내놨지만, 감축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치(BAU) 대비 14.7∼31.3%까지 감축하겠다는 내용의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중 하나로 확정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처음으로 203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를 산정했다. 8억5천60만CO₂-e(이산화탄소환산량)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 과정에서 2020년 BAU를 7억8천250만CO₂-e로 재설정했다. 2011년에 정부가 산정한 2020년 BAU가 7억7천610만CO₂-e였으니, 640만CO₂-e가 늘어난 것이다.
소폭 증가라 큰 의미를 두긴 어렵지만 BAU를 높게 잡을수록 감축목표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개운치 않다는 평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통계산정 방식 등에 일부 변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정부가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해 여론 수렴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2안 또는 3안을 유력하게 검토한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2안과 3안은 2030년 BAU 대비 각각 19.2%, 25.7%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이다. 2안은 2012년 배출량 수준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감축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3안은 2012년 대비 8.1%를 감축하겠다는 것이지만, 이 역시 국제사회의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친다.
이미 감축목표(INDC)를 유엔에 제출한 미국은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26∼28% 줄이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26%를 줄이기로 했다.
캐나다 역시 2030년까지 배출량을 2005년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감축목표안에서 특정연도가 아닌 BAU 개념을 사용한 것도 논란거리다.
지금까지 INDC를 제출한 국가 중 선진국들은 대부분 특정연도와 비교해 감축안을 내놨다. 멕시코나 가봉 등 중·후진국이 BAU 개념을 제시했다.
BAU는 미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스스로 산정한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자의가 개입될 소지가 있다. 과거 특정연도를 비교 대상으로 하면 좀 더 객관적이다.
게다가 멕시코는 2030년까지 BAU 대비 25% 감축안을, 가봉은 2025년까지 50% 안을 들고 나왔다. 한국의 확정안이 이들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얘기다.
4개 시나리오 중 어떤 안을 확정하더라도 기존에 정부가 발표했던 2020년 감축안보다 후퇴했다는 지적도 있다. 새로 산정한 2020년 BAU에 14.7∼31.3% 감축률을 단순 대입해 계산하면, 기존에 정부가 2020년 BAU 대비 30%를 줄이겠다고 한 것보다 진전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BAU 대비 14.7%를 줄이겠다는 1안은 2012년에 배출했던 온실가스보다 오히려 5.5% 더 많이 배출하겠다는 것이어서 더 큰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세계 10위권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면서 G20(주요 20개국)의 일원인 한국이 온실 가스 감축에 소홀히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처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소극적으로 제시한 것은 정부가 산업계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살리기’ 화두인 만큼 정부가 산업계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지난달 정부가 2011년 제시했던 ‘2020년 BAU 대비 30% 감축 목표’가 비현실적이라며 목표치를 낮추라고 촉구하는 등 경제계는 지속적으로 정부를 압박해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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