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유연성 놓고 ‘밀당’…”빅딜 모색해야” 목소리
노사정 대화 재개를 놓고 정부·여당과 한국노총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정부와 여당은 노동시장 개혁의 당위성을 소리높여 외치며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듯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이 숨어 있다.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촉구하는 한노총의 입장도 그리 여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화의 장에서 배제된 채 장외 반대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양측의 ‘밀당’(밀고 당기기)이 노동개혁의 성과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 정부·여당의 ‘속도전’…성과 못 내면 ‘개혁 공염불’ 우려
현재 노동개혁을 둘러싼 공방전에서 공세를 취하는 쪽은 정부와 여당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이인제 최고위원 등이 나서서 연일 노동시장 개혁의 당위성을 외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가세한 당정청 ‘삼각편대’가 총출동한 모습이다.
정부와 여당의 최대 무기는 ‘청년 고용절벽론’이다. 내년 정년 60세 연장을 앞두고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려고 하는데 방관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대국민 호소’다. 청년실업에 민감한 사회 분위기에 잘 올라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내 노동시장선진화특위 구성에 이어 한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재촉하고 있다. 한노총이 끝내 거부한다면 행정지침과 입법 등의 형태로 일방적인 노동개혁을 강행할 수 있다는 ‘으름장’도 슬쩍 내보인다.
문제는 노동계의 협조 없는 노동개혁의 길은 ‘고난의 길’이 될 수 있다는데 있다.
정부·여당이 눈앞의 최대 과제로 삼는 임금피크제 도입에서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연내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정작 실적은 좀처럼 쌓이지 않고 있다. 이달 내 실적을 발표하려고 했으나, 노조의 강경한 반대로 도입률이 20%에도 못 미쳐 실적 발표를 내달로 미뤘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김무성 대표와 이기권 장관이 잇따라 한국노총 농성장을 찾아가 노사정 복귀를 설득하는 것은 이러한 속사정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한노총을 끌어들이려면 일반해고 지침, 취업규칙 변경 등 노동시장 유연화 의제는 포기해야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주문한 마당에 이를 선뜻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래저래 고민이 커지는 모습이다.
◇ 한노총도 ‘대화 불참’ 지속 힘들어…”타협점 모색해야”
한노총도 고민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장외’로 뛰쳐나오긴 했지만, 자칫 노동개혁을 외면한다는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 고용절벽이 기우만은 아닌 상황에서 노동개혁을 계속 모른척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정부와 여당의 ‘무기’가 막강하다는 것도 고민을 더 하게 하는 요인이다. 끝내 대화에 참여하지 않을 때 정부가 행정지침이라는 형태로 해고요건 완화 등을 관철할 수 있다. 행정지침는 국회 동의가 필요없는 행정부 고유권한이어서 이를 막을 수도 없다.
이렇게 되면 ‘장내 참여자’라는 한국노총의 입지도 흔들리게 된다. 장외 반대자인 민주노총과의 차별점이 사라지게 된다는 얘기다.
2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상당히 유연한 입장을 내비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 반대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난 것이나, 노사정 복귀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것도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한 결과로 읽힌다.
다만, 정부와 여당이 일반해고 지침, 취업규칙 변경 등을 의제에서 내려놓지 않는한 한노총이 노사정에 복귀할 가능성은 ‘0’에 가까워 보인다. 노동자의 고용안정이라는 노동단체의 존립 근거 자체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양측이 한 발짝씩 물러나 ‘빅딜’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노동단체에 해고요건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며 “노동계에서 임금피크제 등 임금의 유연화를 받아들이는 대신, 경영계가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빅딜을 생각할만하다”고 말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일반해고 지침 등 노동계가 결사반대하는 사안을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노동계는 그 외의 사안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