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 안된 양파 ‘식품’일까, 농산물일까…법원 판단은

조리 안된 양파 ‘식품’일까, 농산물일까…법원 판단은

입력 2015-12-21 10:02
수정 2015-12-2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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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식품 원재료일 뿐 식품 아냐”→2심 “식품위생법상 식품 맞다”

조리되지 않은 양파와 마른 고추는 ‘농산물’이기만 할까, 아니면 ‘식품’으로도 볼 수 있을까.

상한 양파와 마른고추를 중국에서 수입해 판매·보관하다 적발된 식품위생법 위반 사건의 재판에서 이 채소들의 법적 성격을 놓고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렸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한영환 부장판사)는 식품위생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전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간부 조모(48)씨와 송모(61)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유죄를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조씨와 송씨는 2011년 2월 중국에서 수입한 양파 1천t의 일부가 냉해를 입어 짓무르거나 곰팡이가 피어 부패한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인수, 480t을 농협 공판장과 농산물 유통업체에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2011년 9월 말과 10월 초 중국산 수입 마른고추 240t에 곰팡이와 흙먼지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업체에 판매하기도 했다. 그해 말 수입한 마른고추 230t 역시 같은 상태였음에도 판매할 목적으로 창고에 보관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이 수입·판매·보관한 양파와 마른고추가 식품위생법에 규정된 ‘식품’이 아니라며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식품위생법상 식품은 ‘의약으로 섭취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음식물’이다. 1심은 양파와 마른고추가 음식물을 만드는 ‘식품 원재료’이자 농수산물품질관리법이 규율하는 ‘농산물’일 뿐 그 자체가 음식물, 즉 식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식품이나 식품첨가물의 성분 규격과 제조·가공·조리 등에 관한 기준을 고시한 ‘식품공전’에 양파와 고추를 식품 원재료로 분류한 점도 이 채소들이 그 자체로 음식물은 아님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다만 조씨는 마른고추를 수입하면서 수분함량 초과분에 대해 업체로부터 받아야 할 구상금을 제대로 산정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 배임)로도 기소됐기에 법원은 이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식품위생법상 식품의 범위를 잘못 해석했다며 항소했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조리되지 않은 양파와 마른고추는 식품위생법상 식품으로 봐야 한다”며 원심을 깨고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직접 섭취하지 못하는 원재료라 해서 식품위생법상 식품 개념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면서 “식품 섭취 방법은 개인이나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식품 원재료라 해도 직접 섭취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며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식품위생법상 식품에는 자연식품과 가공·조리된 식품이 모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며 “실제 양파와 같은 식품은 사회에서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널리 소비된다”고 판시했다.

식품공전에 양파와 고추가 식품 원재료로 규정됐다는 1심의 논리에 대해서는 “안전성과 건전성이 결여되지 않는 한 다른 방법으로 섭취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봐야 하며, 식품공전이 그런 행위를 금지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조씨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무죄였던 송씨는 벌금 700만원으로 각각 형량이 높아졌다.

재판부는 이들이 ‘농산물 수급 안정을 기하라’는 정부 방침을 따르다 이런 일이 발생한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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